자기이해로 찾는 진정한 자유 - 에리히 프롬의 통찰

내가 원한 건 ‘자유’였을까, ‘도피’였을까?

사직서를 내던 날, 나는 기대했다. ‘이제 자유다’라는 해방감을.
더 이상 야근으로 피곤에 찌들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의 의미없는 지시를 받지 않아도 되며, 쓸데없는 회의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런데 이상했다.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가슴 한편에서는 묘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제 뭐 하지?”

자유를 얻었는데, 왜 이렇게 막막한 걸까.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시키지 않는 이 공백이, 그게 참 이상한 게…
어쩌면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자유’보다 더 두려웠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로 자유를 원했던 걸까? 아니면 그냥 이 회사가 싫었던 걸까?

어디로
[캡션]벗어나는 것까지는 ‘용기’였지만, 나아가는 것은 오롯이 나의 ‘책임’이었다. AI Illustration by Gemini

자유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우리가 갈망하는 자유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억압으로부터, 간섭으로부터,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것. 상사의 잔소리로부터. 조직의 규칙으로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그냥 날 좀 내버려 둬”라는 외침.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자유가 이거다.

다른 하나는 ‘~을 향한 자유(Freedom to)’.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결과를 책임지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자유. 이건… 훨씬 무겁다. 왜냐하면 이 자유는 선택의 무게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대부분이 첫 번째 자유만 갈망한다는 것이다.

“회사만 그만두면 행복할 거야.”
“부모님만 안 간섭하시면 내 삶을 살 수 있을 텐데.”
“이 관계에서만 벗어나면 자유로울 거야.”

막상 그 ‘~로부터’를 떠나고 나면? 텅 빈 백지 앞에 선 것처럼 멍해진다.
우물안 개구리로 사는 것이 답답했는데, 막상 우물을 벗어나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자유가 주어지면, 우리는 도망친다

빈캔버스
[캡션]무엇이든 그릴 수 있다는 자유가, 도리어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게 만들 때. AI Illustration by Gemini
프롬이 발견한 가장 흥미로운 심리.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그 자유로부터 도망친다는 것.

왜 그럴까? 자유는 책임과 불안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라면, 그 결과는 온전히 내 책임이다.”
“선택지가 무한하다는 건, 그만큼 ‘틀릴 가능성’도 무한하다는 뜻이다.”
“아무도 나를 정의해주지 않으면, 나는 스스로 나를 정의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권위를 찾는다.
나 역시 그랬다. 요즘 나는 이런 나 자신을 자주 발견한다.

“블로그를 시작했지만, ‘조회수 높은 글 쓰는 법’만 검색하고 있는 나.”
“창업을 준비하면서, ‘성공한 창업가의 루틴’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그 책의 방법론을 ‘정답’으로 받아들이려는 나.”

나는 수없이 많은 ‘성공 사례’를 찾아봤다. 그들의 전략을, 시스템을, 루틴을.
노션과 옵시디언에 정리하고 마인드맵을 그리고,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왜? 그게 편했으니까.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누군가 정해놓은 길을 따라가면 됐으니까.
그 길이 나와 맞지 않더라도,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니니까.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들의 답을 따라 하려는 게 아니라, 나만의 답을 만들어야 하는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이제 ‘이렇게 하면 된다’는 정답이 없었으니까.
모든 선택이 실험이고, 모든 실패가 내 책임이 되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 순간이 가장 자유로웠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으로 살 수 있게 됐으니까.(사실 이 부분을 알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진짜 자유는,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

프롬은 말했다. 진정한 자유는 적극적 자유라고.
단순히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고, 창조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이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굉장히 불안하고 불편한 일이다.

아무도 나에게 ‘이게 답이야’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내린 선택이 틀릴 수도 있다.
실패하면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불편함을 감수할 때, 비로소 ‘내 삶’을 산다.
남의 기준으로 점수 매기는 삶이 아니라, 내가 정의한 의미로 채워지는 삶을 산다.

나는 어떤 자유를 원하는가?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다.

“나는 무엇’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
“나는 무엇’을 향해’ 자유로워지고 싶은 걸까?”

회사로부터?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불안으로부터?
창조를 향해? 연결을 향해? 나다움을 향해?

아직 명확한 답은 없지만,
진짜 자유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것에 기꺼이 얽매이는 것이 아닐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 그 자체가 자기이해의 시작(당신의 고민에 ‘정답’ 대신 ‘질문’이 필요한 이유)이다.

블로그를 쓰는 것도, 내 사업을 준비하는 것도, 사실은 새로운 책임을 떠안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선택한 무게다. 그래서 무겁지만 가볍다.
힘들지만 의미 있다.

자유는, 나를 이해할 때 시작된다

프롬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

“진정한 자유는 자기 자신을 아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선택이 나답고 어떤 선택이 나답지 않은지.
이걸 모른 채 자유를 갈망하면, 우리는 결국 또 다른 권위에게 나를 맡기게 된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면, 자유는 두렵지 않다.
선택의 무게가 부담스럽지 않다.
그 선택은 ‘나로부터’ 나온 것이고, 그 결과 역시 ‘나’를 더 이해하는 과정이 되니까.

오늘의 심리학 사전: 에리히 프롬의 ‘자유’ 개념과 적극적 자유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누구인가?

에리히 프롬(1900-1980)은 독일 출신의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입니다. 프로이트와 마르크스의 사상을 융합하여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와 자유의 문제를 탐구했습니다. 나치즘의 발흥을 목격하며 “왜 사람들은 자유를 두려워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 답을 찾아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 1941)』를 집필했습니다.

‘~로부터의 자유’와 ‘~을 향한 자유’

프롬은 자유를 두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 소극적 자유(Freedom from): 억압, 간섭, 통제로부터 벗어나는 것. “~로부터 해방되는” 자유입니다. 예를 들어 독재 정권으로부터의 해방, 직장의 억압으로부터의 탈출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 적극적 자유(Freedom to):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창조하며, 그 결과를 책임지는 자유입니다. “~을 향해 나아가는” 자유로, 자기실현과 자율성을 포함합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란?

프롬이 발견한 가장 역설적인 심리 현상입니다. 사람들은 자유를 갈망하지만, 막상 자유가 주어지면 그 자유가 가져오는 고독, 불안, 책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새로운 권위나 집단에 복종하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나치즘의 등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인들은 정치적 자유를 얻었지만, 경제적 혼란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오히려 강력한 지도자(히틀러)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했습니다. 현대에도 이 현상은 반복됩니다. 퇴사 후 자유를 얻었지만 막막함에 다시 “성공 공식”을 찾아 헤매거나, SNS에서 “이렇게 살면 된다”는 가이드라인에 의존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왜 이 개념이 중요할까?

  • 자기이해의 출발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향한 주체적 선택”인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 성장의 방향 설정: 단순히 “~가 싫어서” 벗어나는 것과 “~를 하고 싶어서” 선택하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의 궤적을 만듭니다.
  • 책임 있는 자유: 진정한 자유는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일상 속 실천 Tip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오늘 한 선택 중에서,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선택은 무엇이었고, 무언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전자가 많다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다시 한번 돌아볼 시간입니다. 후자가 많다면, 그 선택들이 쌓여 여러분만의 자유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