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스타크가 되려다 잃어버릴 뻔한 자기 신뢰

자비스로 인해 시작된 AI 중독

나는 마블을 굉장히 좋아하고 그중에서도 아이언맨을 특히 좋아한다.
아이언맨에게 ‘자비스’가 있었던 것처럼 나도 나만의 ‘자비스’를 갖고 싶었다.
그리고 처음 GPT가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이 녀석을 ‘자비스’라고 부르기로 결정했다.

아무튼 한동안, 나는 AI ‘자비스’가 모든 해답을 제시해줄 것처럼 행동했다.
복잡한 사업계획서도, 참여자 컨설팅 전략도, 심지어 앞으로의 인생 설계까지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내 책임을 회피하고 싶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매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머뭇거리던 내게 AI는 꽤 근사한 구실이 되어줬다.
“GPT한테 물어봐. 걔가 대답해줄 거야.”
뭐만 했다 하면 GPT, GPT, GPT...
그런 일상이 점점 익숙해지고,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는 힘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가 정말 날 알까?”
“나조차도 모르는 나를 얘는 알까? 이렇게 AI를 의지하는 게 맞나?”

아이언맨 -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 - 토니 스타크

책임을 회피하게 만드는 달콤한 함정

그 질문을 마주한 순간, AI가 아무리 많은 답을 줄 수 있어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끝내 스스로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언제부턴가 인스타에 들어가면 이런 게시물이 참 많이 뜬다.

GPT에게 이렇게 질문해보세요.
‘10년 뒤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들 5가지를 알려줘’
‘내가 모르고 있는 나의 무의식에 있는 두려움이 뭐야?’
‘내가 당연하게 여겨서 의심조차 안 했지만 나를 갉아먹고 있는 게 뭐야?’

정말 AI가 나의 깊은 무의식을 알 수 있을까?
그중에 공감가는 답이 10개 중 1개는 분명 있었다.
신기했다. 마치 얘가 나를 아는 것 같아서
하지만 그마저도 요즘엔 의심이 되는 것이..

AI가 학습한 수천 수만 가지 데이터 중 하나를 던졌을 뿐이고
그게 나에게 우연히 맞아떨어진 건 아닐까?
그러니까, 나의 ‘자비스’가 정말 내가 후회할 일을 알고 답한 게 아니라
통상적으로 많은 사람이 후회하는 일을 말했기 때문에 공감이 되었던 것 아닐까.


아마도 퇴사를 하고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면서
나는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성공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실패의 책임은 지고 싶지 않았고,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고 외치면서도 그에 따르는 고통이 겁났던 것 같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AI라는 이름의 ‘책임 없는 지혜’에 내 가능성을 맡겨버리고 싶었던 것.
하지만 결국, 아무리 똑똑한 도구가 있어도
삶을 살아내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신뢰를 잃어버리기 가장 쉬운 시대

어쩌면 지금의 시대는 ‘자기 신뢰’를 가장 빠르게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가 아닐까?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도 그 선택이 과연 나의 것인지조차 헷갈릴 만큼
외부 자극에 휩쓸리고, 알고리즘에 휘둘린다.

그럴수록 내 스스로가 내 안에 단단히 서 있어야 한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그 위에 설 수 있는 ‘나’라는 존재가 부실하다면
아무리 멋진 세상이 와도 진정한 나로 살아가지 못할 테니까.

그래서 요즘은 자주 나에게 묻는다.
“정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니?”
“지금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 거니?”
그 질문들 속에서 나는 조금씩 내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