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2편-5분 감정일기로 시작하는 자기 발견
이 글은 감정일기 시리즈 두 번째 글입니다.
감정일기 쓰기 1편을 안보셨다면 여기로 :D
나만의 감정일기 방식 찾기
감정일기를 쓴다는 것이 처음엔 막막했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T성향과 F성향에 따른 서로 다른 일기장 양식을 보게 되었다. F성향은 감정 중심으로, T성향은 사실 중심으로 기록하는 방식이었다.
그때의 나는 F성향이 강했는데 감정만 쓰자니 뭔가 조금 아쉬웠다. 기존에 쓰던 일기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나는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했다. T성향이 쓰는 일기 템플릿에는 사실 관계에 대해 작성하는 양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두 가지를 섞어서 써보기로 했다. 일어난 일은 객관적으로 사실만을 적고, 그에 대한 내 주관적인 감정을 분리하여 정리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쓰다 보니 점점 내 감정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글로 써내려가면서 마음이 정리되는 걸 느꼈다.
내가 정착한 감정일기 작성 방법
1편에서 다루었던 예시 참고
1. 일어난 일 (객관적 사실만)
- 팀장님과의 대화 내용
- 신입선생님과의 상호작용
2. 사건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
- 그때 느낌: 당황스럽고 서운했다
- 지금 느낌: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난다
3. 관계/사건에서 느낀 점
- 나는 명확한 피드백을 받길 원한다.
- 나의 입장에서 선의가 타인의 입장에선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4. 이 사건으로 알게 된 나의 모습
-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증폭되는 패턴이 있다
- 억울함을 잘 삭이지 못한다
시작하기 전, 꼭 알아야 할 주의사항
감정일기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적합한 것은 아니다. 나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알게 된 주의사항들이 있다.
감정일기가 적합하지 않은 경우
현재 전문의에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
우울증, 공황장애 등 전문적인 치료를 받고 있는 경우, 표현적 글쓰기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런 경우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 후 진행하는 것이 좋다.
트라우마가 너무 최근이거나 심각한 경우
매우 최근에 발생한 심각한 트라우마의 경우, 충분한 시간적 거리가 확보되기 전까지는 전문적인 치료가 우선되어야 한다. 감정일기는 어느 정도 안정화가 이루어진 후의 보조적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의 경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앓고 있던 당시 작성하던 일기를 보면 부정적인 감정에만 매몰되어 있었다. 심할 때는 일기를 하루 종일 붙들고 나는 불행하다는 생각에 빠져들던 때도 있었다. 이럴 때는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일기장을 덮어서 부정적인 감정에 빠져드는 것을 중단시켜 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감정일기의 다양한 예시
감사 일기: 긍정적 감정이 필요할 때
부정적 감정에 자주 빠질 때 활용했고 사소한 일상에서 감사한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쓴 방식:
오늘 감사한 것 3가지:
- 아침에 눈을 뜬 순간
→ 나에게 오늘이 있음을 감사 - 집에 와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
→ 소소한 일상이 주는 위안 - 배우자와 짧게나마 대화할 수 있었던 시간
→ 혼자가 아니라는 안정감
보내지 않는 편지: 억눌린 감정 해소하기
특정인에 대한 분노나 원망이 계속 마음에 남아있을 때 그 대상에게 편지를 쓰는 방식을 써봤다.
“OO에게” 또는 “과거의 나에게”로 시작해서 하고 싶었던 모든 말을 편지 형식으로 썼다. 분량, 내용 제한 없이 자유롭게 표현했다. 물론 내가 아닌 다른 대상이었다면 실제로 보내지는 않았다. 이불킥을 할 수 있으니…
쓴 후에는 찢어버리거나 삭제했다. 바로는 아니고 감정이 조금 정리 된 뒤에 또는 더 이상 이 감정에 얽매이고 싶지 않을때 편지를 버리는 것으로 감정을 종료시키는 행위가 되었다. 상대방을 향한 원망보다는 나의 감정 표현에 집중하는 게 중요했다.
3인칭 관점 글쓰기: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감정적으로 너무 압도되어 객관적 사고가 어려울 때 써봤다. 나의 경험을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3인칭으로 서술하는 방법이다.
나를 가상의 인물로 설정하고(이름도 다르게), 마치 소설이나 다큐멘터리를 쓰듯 3인칭으로 서술했다. 그 인물(나)의 행동과 감정을 관찰자 시점으로 들여다봤다. 힘든 일을 겪었을때 내가 아닌 타인이 되어 나를 서술하게 되면 나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그래 그럴만했다.”라고 다독이며 위로가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바로 사용할 수 있는 감정일기 템플릿
페네베이커 가이드 기반 템플릿
사용 시기: 스트레스 상황 후 | 소요 시간: 15-20분
날짜: 년 월 일
- 무슨 일이 있었나?
- (객관적 사실)
- 그때와 지금 나의 생각과 감정은?
- 그때 느낌:
- 지금 느낌:
- 몸에서 느낀 감각은?
- 가슴이 답답했다, 목이 메었다, 손에 힘이 빠졌다 등
- 이 경험이 내 삶과 어떻게 연결되나?
- 과거 경험과의 연결:
- 현재 나의 모습:
- 이를 통해 배운 것:
툭히용 간단 템플릿
사용 시기: 매일 잠들기 전 | 소요 시간: 3-7분
날짜: 년 월 일
- 일어난 일
- (객관적 사실만)
- 사건에 대한 내 감정
- (그때 당시 느꼈던 감정 또는 지금 떠오르는 감정)
- 관계/사건에서 느낀 점
- (상대방에게 느낀 점 또는 사건에 대해 느낀 점)
- 이 사건으로 알게 된 나의 모습
- (새로 발견한 나의 모습 / 알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알게 된 모습)
개인 경험 Tip: 내가 감정일기를 시작했을 때는 페네베이커 연구를 몰랐다. MBTI 양식에서 시작해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진게 바로 위의 템플릿이다.
신체 감각 부분이 빠져있지만 그래도 충분히 효과적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신체 감각 묘사와 내 삶과 연결하는 것까지 작성해야 했다면? 너무 어려웠을 것 같다. 그 부분은 지금도 어려워서 건너뛸때가 많다..
감정일기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일어난 사실과 나의 감정을 분리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나는 꾸준하게, 그러니까 매일 작성하지도 못했다. 다만 감정이 요동치는 날에는 꼭 감정일기를 작성했다.
회고 템플릿
사용 시기: 주말 등 주 1회 | 소요 시간: 30분
주간 돌아보기: 년 월 일
- 이번 주 기억에 남는 사건들
- 객관적인 사실 들
- 기록하고 싶은 만큼
- 각 사건에서 느낀 감정과 생각
- 사건1:
- 사건2:
- 사건3:
- 관계에서 발견한 패턴
- 누구와 있을 때 편안했나:
-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받았나:
- 내가 타인에게 보인 반응:
- 이번 주 나에 대해 알게 된 것
- 반복되는 나의 패턴:
- 잘한 점:
- 다음 주 개선하고 싶은 점:
AI 활용 팁: 어느정도 감정일기가 쌓이면 회고를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혼자서 작성하는 것이 어려울 땐 일주일간 작성한 감정일기를 AI(GPT, Gemini, Claude 등)에게 첨부한 후 위 템플릿으로 정리를 요청하면 조금 더 쉽게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마무리하며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감정에 휘둘리는 날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이제는 그런 날에도 “일단 써보자”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글로 써내려가다 보면 어김없이 마음이 정리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복잡하거나 감정이 정리되지 않는다면, 오늘 밤 한 페이지라도 써보는 건 어떨까요.
오늘의 심리학 사전: 페네베이커 프로토콜과 글쓰기 치료의 과학적 원리
페네베이커 프로토콜(Pennebaker Protocol)이란?
제임스 페네베이커 교수가 개발한 체계적인 감정 글쓰기 방법론으로, 30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과학적으로 검증된 치유적 글쓰기 기법입니다. 15-20분간 연속으로 개인적으로 중요한 경험에 대해 사실과 감정을 모두 포함하여 쓰는 것이 핵심이며, 단순한 일기 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목적과 방법을 가집니다.
기본 원칙과 방법
시간: 15-20분
→ 너무 짧으면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너무 길면 지쳐서 포기하게 되는 적정 시간
빈도: 3-5일 연속
→ 하루 건너뛰며 쓰는 것보다 며칠 연속으로 쓸 때 더 큰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음
주제: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스트레스가 되는 경험
→ 마음에 계속 맴돌거나 힘들게 하는 일,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있는 상황
3가지 핵심 규칙
-
연속성: 멈추지 않고 계속 쓰기
→ 생각이 막혀도 손을 계속 움직여야 진짜 속마음이 나옴 -
형식 무시: 맞춤법, 문법 등 무시하기
→ 완벽하게 글을 쓰려다 보면 정작 중요한 감정을 놓치게 됨 -
비밀 보장: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쓰기
→ 남이 볼 거라 생각하면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없음
효과적인 내용 구성법
1. 사실과 감정을 모두 포함하기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지 말고, 그때 느꼈던 감정과 지금 느끼는 감정을 함께 기록한다.
2. 신체 감각 묘사하기
“가슴이 답답했다”, “목이 메었다”, “손에 힘이 빠졌다” 등 몸에서 느꼈던 구체적인 감각을 기록한다. 이는 감정을 더 정밀하게 구분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
3. 의미 있는 서사 구축하기
특정 사건을 자신의 삶의 다른 부분들과 연결해보기.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이 내 과거/현재/미래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캡션]Situation, Thought, Action&Affect, Reflection 4단계 가이드.
오늘 실천해볼 한 가지
위 원칙들이 복잡하게 느껴진다면 본문의 간소화 템플릿부터 시작해보세요. 완벽한 형식보다는 꾸준한 실천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밤 5분만 투자해서 하루를 되돌아보며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