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일기 1편-내 감정의 주인이 되는 글쓰기

감정 조절이 어려웠던 시기

한때, 수시로 화가 나서 잠도 못 이루던 시절이 있었다.

몇 가지 일들이 직장에서 연달아 있었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늘 반복되는 감정의 전이였다. 우리는 각 상담사마다 개인의 방에서 상담을 진행하고 업무를 보았다. 내 방은 팀장님 옆방이었는데 방음이 잘 되지 않아서 통화 소리가 세세하게 다 들릴 정도였다. 특성상 유선으로 타 센터 직원들과 소통할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팀장님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이야기를 많이 하셔서 그 감정이 나에게 계속 전이되고 하루 종일 짜증이 났다.

그런 예민한 상태에서 어느 날은 팀 단합대회 저녁 술자리에서 일이 터졌다. 스케이트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저녁을 먹으며 신입들 교육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팀장님이 갑자기 내 교육방식에 대해 “너의 방식이 마음에 안 들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신입 시절, 특별히 교육을 받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서 나름의 체계를 갖고 진행했던 건데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는지 물어보자 “아 몰라, 마음에 안 들어”라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당황스럽고 서운했다.

그런가 하면 신입선생님과의 일도 있었다. 일을 어려워하는 모습이 보여서 “어떤 부분이 힘드냐”라고 도움을 주려 했는데, “본인 문제이니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 거절을 당했다. 선의로 다가갔는데 무례하다고 느껴졌고, 뭔가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나는 특이한 패턴을 보였다. 그 순간에는 당황스럽거나 서운한 정도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감정이 더 강해지는 거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들을 곱씹으며 화가 올라와 잠을 못 이루곤 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편하게 잠을 좀 이루고 싶어서.

내가 직접 경험한 변화들

매일 꾸준하게 기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불편한 감정들을 경험할 때마다 써보니 나에게는 즉각적으로 감정이 정리되는 효과가 있었다. 물론 분노게이지가 Max일 때는 효과가 미미했다

부정적인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는 화가 나거나 우울한 일이 있으면 며칠씩 그 감정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을 인식하되 매몰되지 않게 되었다. 객관적으로 내 감정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자기 이해가 향상되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 뒤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의 감정 패턴을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관계가 개선되었다.
혼자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편하던 내가 결혼까지 하게 됐다. 내 감정 패턴을 알고 나니 다른 사람과의 갈등 상황에서도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었고, 무엇보다 갈등이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더 깊은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실제로 몸도 편해졌다.
나는 원래 잔병치레가 많았다. 예민하다보니 술도 안 마시는 내가 위궤양을 달고 살 정도였고 1년에 한 번은 위 내시경을 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 속이 안좋아서 병원을 가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마음이 편해지니 몸도 따라 편해진 것 같다.

감정일기를 작성하지 않는 순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감정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습관적으로 사건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됐고, 타인과의 대화에서도 명확하게 내 의견을 전달할 수 있게 되면서 더 깊은 오해를 방지하고 빠르게 불편한 상황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었다.

과학적 근거를 찾다

직접 감정일기의 효과를 경험했지만 그 원리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관련 연구를 찾아보니 과학적 근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했던 방식들과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다는 게 신기했다. 물론 이런 변화가 감정일기 하나만으로 일어났다고 볼 순 없다. 상담 치료, 신앙생활, 환경 변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감정일기가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증명된 감정 일기의 효과
[캡션]제임스 페니베이커의 연구에 따르면, 4일간 하루 15분 글쓰기는 놀라운 변화를 가져옵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잠들기 전 베개에 머리를 대면서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감정들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그 감정들과 대화해 보는 건 어떨까요?

처음엔 뭘 써야 할지 막막할 수도 있고, 내가 느낀 감정과 실제 일어난 일을 구분해서 생각한다는 게 쉽지 않을 수 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그 어색함조차 하나의 감정이고, 그것도 기록할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다음 편에서는 감정일기를 실제로 어떻게 시작할 수 있는지, 작은 팁들을 나눠볼게요.

오늘의 심리학 사전: 표현적 글쓰기와 감정 조절의 심리학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란?

표현적 글쓰기는 개인적으로 중요하고 스트레스가 되는 경험에 대해 사실과 감정을 모두 포함하여 쓰는 글쓰기 방법입니다. 제임스 페네베이커(James Pennebaker) 교수가 개발한 이 방법은 30년 이상의 연구를 통해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왜 효과적인가?

  • 감정 억제의 해소: 힘든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안전한 공간에서 표현할 수 있게 돕니다.
  • 인지적 재평가: 경험을 언어로 구조화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 습관화: 반복적인 노출을 통해 고통스러운 기억에 둔감해집니다.

연구로 입증된 효과

  • 우울 증상 13-15% 감소
  • 불안 수준 12-18% 감소
  • 면역세포 15-20% 증가
  • 병원 방문 35-50% 감소
  • 기억력 5-8% 향상

출처: 표현적 글쓰기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 페네베이커의 표현적 글쓰기 연구

뇌과학으로 본 3가지 치유 메커니즘

뇌 변화 메커니즘
[캡션]감정혼란에서 정서적 안정까지의 과정
1. 생각 정리하기: 글로 쓰다 보면 혼란스러운 감정을 질서 있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일어난 사건과 감정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지금 내가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도 보입니다.
2. 감정에 이름 붙이기: 감정을 언어로 표현할 때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감정적 고통을 관장하는 편도체 활동은 감소합니다. 즉, “불안하고 상처받았다”라고 쓰는 것만으로도 뇌의 감정 반응이 완화됩니다.
3. 안전하게 마주하기: 일기장에서만큼은 아무도 나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이 안전한 공간에서 힘들었던 기억을 반복적으로 적다 보면 그 기억이 조금씩 덜 아프게 느껴집니다. 마치 상처가 아물어가는 것처럼.

오늘 실천해볼 한 가지

오늘 하루 중 가장 강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그 순간에 일어난 사건과 당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지금 드는 생각을 간단하게라도 작성해보세요. 맞춤법이나 문법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시작해보는거에요.